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 p284-p288
케이시 마틴은 다리가 불편한 골퍼였다. ... 마틴은 미국 프로골퍼협회(PGA)에 ... 경기중에 골프 카트를 이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PGA는 ... 이 요구를 거절했다.
골프계의 거물 ...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켄 벤추리는 카트 금지 규정을 지지했다. 이들은 골프 토너먼트에서 피로 역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마틴이 걷지 않고 카트를 타면 불공평하게 이익을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형평성이 논란의 전부였다면, 해결책은 쉽고도 분명하다. 토너먼트에서 모든 선수에게 카트 이용을 허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프로 골프에서는 아연실색할 일 ... 이다. 왜 그럴까?
문제의 요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 골프는 까다로운 기술이 필요한 경기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뛰어난 선수들이 영광을 얻고 인정받으려면 이 스포츠가 육체적으로 힘든 경기로 보여야 한다. 이 분야 최고 선수라고 자부하면서 카트를 타고 경기한다면, 운동선수로서 위신이 의심스럽거나 떨어지게 마련이다. 일부 프로 선수들이 카트를 이용하려는 마틴의 시도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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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 반대 이유 아래 사이트에서 인용 :
최만리를 비롯한 집현전관등이 ... 소위 언문반대상소를 올리게 된다. ...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은 예부터 지성사대를 해왔으며 글과 법도를 같이 해왔다. ... 만일 이런 사실이 중국에 흘러들어가서 비난하는 자가 생기면 어려움이 생긴다.
둘째, 중국과 우리나라는 한문을 쓰고 이적만이 다른 문자를 쓰고 있다. 따라서 언문을 만드는 것은 중국문화를 벗어나서 이적으로 되는 것에 불과하다.
셋째, ... 언문을 사용한다면 ... 성현의 학문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문이 쇠퇴한다. 또한 ... 언문은 하나의 기예이므로 학문과 정치에 방해가 된다.
넷째, 언문으로 형옥을 다스리면 억울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상 그렇지 않다. 언문일치가 되는 중국도 억울한 송사가 많이 있다.
다섯째, 국가가 근래에 조치하는 일은 모두 어설프고 빠르게 처리하는데 이는 위험한 처사이다. 언문이 꼭 필요해서 만든다면 상하로 여론을 듣고 상고하여 시행해야 한다.
여섯째, 동궁이 성학에 노력해야 할 때에 정치도리에 유익이 없는 언문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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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 이것이 반대의 이유인가?
위의 주장이 훈민정음 창제 반대 논란의 전부였다면, 해결책은 쉽고도 분명하다. 모든 관리(또는 국민)는 한문과 훈민정음을 동시에(또는 각자의 자율적 선택에 따라) 사용하게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해결책은 최만리 등에게는 아연실색할 일이다. 왜 그럴까?
문제의 요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짚어 보자. 뛰어난 학자가 영광을 얻고 인정받으려면 공부가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조선의 최고 학자라고 자부하면서 훈민정음을 쓴다면, 학자로서 위신이 의심스럽거나 떨어지게 마련이다.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을 사용하려는 세종의 시도에 격렬히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2. 좀 색다른 생각 하나
조선의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 정도로 말과 글의 차이가 불편했다면 왜 고려는 훈민정음을 안 만들었을까요? 그 이유를 말과 글의 차이점으로부터 찾아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말과 글의 주된 용도는 '말은 (정보와) 감정의 전달 수단'이고 '글은 정보(와 감정)의 저장 수단'으로 판단됩니다.
말은 생각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야하므로 생각할 때 사용되는 언어와 표현할 때 사용되는 언어(말)가 다르면 상당히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할 때 사용되는 언어와 저장할 때 사용되는 언어(글)가 다르면 좀 불편할 뿐입니다.
여기서 언어의 정보 저장 기능을 좀 더 세분하겠습니다. 하나는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종이에 기록하는 언어이고 하나는 기록된 정보를 얻는 언어입니다.
위에서 세분된 언어의 기능 중 '기록된 정보를 얻는 언어'와 '생각하는 언어'의 불일치는 언어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말과 글이 일치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보다 더 많은 생각과 시간을 소요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말과 글의 불일치는 불편하긴 하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강요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의 사고를 깊게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3. 말과 글의 불일치는 이익인가 아니면 손해인가?
글을 단순하게 지식의 저장 장치로만 본다면 손해라기보다는 이익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글이 저장 장치라 해도 글은 분명히 감정의 전달 기능도합니다. 예를 들면 한양의 임금과 부산 동래의 머슴처럼 말로 직접 정보와 감정을 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장소가 먼 경우 글은 저장이 아닌 전달의 수단으로 이용되야 합니다. 그런데 언어의 정보 전달 기능은 즉시성이 중요하므로 말과 글의 차이는 이익이기 보다는 손해입니다.
4. 세종 마음 엿보기
세종이 한문으로 기록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언어의 정보 전달 기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더 먼 지역, 더 낮은 사람들의 정보를 전달 받으려고 함으로서 역설적으로 세종은 자신의 따듯한 마음을 더 먼 지역, 더 낮은 사람에게까지 전달하려한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훈민정음 창제는 하나의 훌륭한 언어(또는 표현)입니다. 왕이 백성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이 보다 더 뛰어나게 전달(또는 표현)하는 방법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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